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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시나무 (Quercus myrsinifolia Blume)

초록사유 2025. 5. 26. 09:30

2. 가시나무 ( Quercus myrsinifolia Blume )

다른 나무들보다 유독 짙은 녹색으로, 군데 군데 빛나는 나무를 만났습니다. 다가가 보니 매끈하면서도 두터운 잎, 그리고 그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는 나무였어요. 이 나무가 바로 가시는 없는데 가시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좀 억울할 듯한 나무입니다.

가시나무는 상록 활엽 교목, 즉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넓은 잎을 가진 큰키나무입니다. 학명은 Quercus myrsinifolia, 참나무속에 속하면서도 낙엽이 아닌 상록이라는 점이 특징이에요. 보통 높이 10~15m까지 자라며, 줄기는 곧게 뻗고 수형은 전체적으로 조밀한 타원형을 이룹니다.

잎은 어긋나며, 길이 약 5~10cm, 너비는 2~4cm 정도로 타원형이고 끝은 점차 뾰족해집니다. 가장자리에는 작은 톱니들이 있으며, 이 톱니는 매우 단단하고 날카로워서 실제로 만져보면 마치 잎에 가시가 달린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이 나무의 이름이 왜 '가시나무'인지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죠. 잎의 표면은 진한 녹색에 윤기가 흐르며, 뒷면은 연녹색으로 톡톡한 질감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인상 깊은 점은 한겨울에도 그 진한 녹색 잎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눈이 내린 날, 앙상한 가지들 사이에서 푸르게 우뚝 선 가시나무를 보면, 자연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생명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요.

내가 만난 가시나무

직접 잎을 만져보았을 때, 손끝에 느껴지는 단단함이 꽤 놀라웠어요. 평범한 잎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그저 보기 좋은 조경수라기보다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구조를 스스로 갖춘 식물이라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겨울이 되도록 잎이 거의 떨어지지 않고 진한 녹색을 유지하는 것을 보며, 저는 그 생명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죠. 자연은 이렇게 말없이 우리에게 강함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 같아요.

분포와 생육환경

가시나무는 제주도와 전라남도 진도 등 남부 해안 섬지역에 자생합니다. 내륙 지역에서는 자생은 어렵고, 대부분 조경수로 심어진 개체들입니다. 일본, 중국 동남부 등 따뜻한 지역에도 분포해요.

내한성, 즉 추위에 대한 저항력은 강하지 않지만, 내염성(염분 견딤), 내공해성(공해 견딤), 맹아력(잘 자라는 힘)은 매우 뛰어난 수종이에요. 그래서 바닷가나 도시 내 공원, 도로변 조경수로도 널리 사용됩니다.

토양은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배수가 잘 되는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며, 어릴 땐 음지에서도 견디지만 성목이 되면 양지를 좋아하는 양수성 수종이에요.

꽃과 열매

가시나무는 4~5월경 꽃이 피는데, 암수한그루(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모두 존재)로 수상꽃차례 형태로 피는 단성화예요.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나며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고운 연노랑빛을 띠고 있습니다. 수분은 바람이나 곤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도토리가 맺혀요. 길이 1.5~2.5cm 정도이며, 총포(도토리를 감싸는 껍질)는 비교적 단단하고 매끈합니다. 완전히 익으면 갈색으로 변하고, 도토리는 땅으로 떨어지며 싹을 틔우기도 해요.

조경수로서의 가치와 생태적 역할

가시나무는 해안 방풍림, 도시의 공원수, 생울타리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됩니다. 특히 잎이 두껍고 광택이 있으며, 사계절 내내 초록빛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상록조경수로 매우 인기 있어요.

또한 잎 가장자리에 있는 단단한 톱니 덕분에 자연 울타리 역할도 가능하고, 비탈면이나 도로변의 토양 유실 방지용 식재수로도 적합합니다.

그 외에도 꽃은 곤충에게 화분과 꿀을 제공하며, 열매는 일부 야생 조류에게 먹이 역할을 해요. 즉, 단순한 조경 목적을 넘어서 생태계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내고 있는 나무랍니다.

병해충과 관리

가시나무는 비교적 병해충에 강하지만,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뿌리 손상이 있을 경우 탄저병, 잎마름병, 뿌리썩음병이 생길 수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르도액이나 다이센수화제 등 기본적인 방제제를 주기적으로 뿌려주면 돼요.

진딧물이나 응애 같은 해충이 붙는 경우엔 스미치온, 마라톤유제 같은 살충제를 사용하면 효과적이에요.

전정(가지치기)은 크게 필요 없지만, 나무의 형태를 유지하거나 햇빛 투과를 돕기 위해 이른 봄에 가볍게 정돈해 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무리하며

가시나무는 붉가시나무나 상수리나무처럼 다른 참나무과 나무들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도토리의 모양이나 잎의 형태를 찬찬히 비교해보면 각 나무가 가진 개성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죠.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가시나무, 잎 가장자리를 단단한 톱니로 ‘가시’처럼 무장한 이 나무는 마치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가 이런 나무를 찾아봐야 하는 이유는, 단지 나무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식물 하나하나에 깃든 생명력과 이야기를 스스로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빠른 일상 속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절을 견디고 살아가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 마음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니까요.

혹시 다음 산책길에서 무성한 초록 잎 사이에 날카로운 톱니를 가진 나무를 만나게 된다면, “이게 가시나무일까?” 하고 조심스레 잎을 살펴보세요. 작지만 강한 생명력이, 당신 곁에도 조용히 자라고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