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노각나무 (Stewartia koreana)
20. 노각나무 (Stewartia koreana)
노각나무를 처음 봤을 때, 수피에 얼룩덜룩하게 패인 무늬가마치 군복무늬처럼 보여서
‘군대 위장복 같다’고 느꼈었어요.
하지만 나무 전체에서 풍기는 느낌은 그와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단정하고 우아한 수형, 부드러운 잎, 은은한 꽃까지…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의외성이 큰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그 독특한 반전매력을 가진 노각나무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노각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노각나무는 차나무과(Theaceae)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이에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는 한국 특산 수종이고,
특히 지리산·소백산·내장산·한라산 등 습윤하고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랍니다.
세계적으로 7종의 노각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노각나무가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크기는 보통 10~15m, 굵은 것은 지름 50cm 이상까지도 자라며,
키보다는 수형이 정돈되어 있는 점이 먼저 눈에 띄는 수종입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세로로 곧게 올라가는 듯하면서도, 가지는 부드럽게 벌어져 풍성한 인상을 줍니다.

수피
노각나무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수피였습니다.
얼룩덜룩한 회갈색·황갈색·녹갈색 무늬가 불규칙하게 섞여 마치 군복 위장무늬처럼 보이거든요.
겉껍질은 얇고 매끈하게 벗겨지며, 새롭게 드러나는 속살은 상대적으로
연한 색을 띠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무늬가 생기는 것이죠.
이 수피의 패턴은 계절이 지나며 서서히 변하고, 비에 젖었을 때 특히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여름철, 빗방울을 맞은 노각나무의 수피는 마치 추상 미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나무를 구분할 때 수피만 보고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감별 포인트가 강한 부분이에요.

잎의 특징
잎은 어긋나기하며 타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입니다.
크기는 길이 4~10cm, 폭은 2~5cm 정도로 중간 크기이고, 가장자리에 잔잔한 톱니가 있습니다.
잎의 앞면은 진한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색을 띄며, 육안상 털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특이한 점은 엽맥이 약간 움푹 패여 있어 잎 표면이 물결처럼 보인다는 점이에요.
가까이서 보면 오돌토돌한 감촉이 느껴지기도 하고,
잎을 만져보면 부드럽지만 튼튼한 질감입니다.
또한, 가을이 되면 단풍이 매우 아름답게 물드는데요,
붉은빛과 주황빛이 섞인 오묘한 색으로 변해 주변 나무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편이에요.

꽃
노각나무의 꽃은 6~7월, 여름에 핍니다.
크기는 약 3~4cm 정도이고, 흰색 꽃잎 5장이 수평으로 퍼지며 피는 모습이
단정하고 고요한 느낌을 줍니다.
꽃잎은 둥글고 끝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모양이며, 중앙에는 노란 수술이 빼곡하게 모여 있어요.
꽃은 1개씩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아래쪽에서부터 위쪽으로 순차적으로 피어 올라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덕분에 같은 나무에서도 여러 시기의 꽃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는 재미가 있어요.
가까이서 보면 꽃잎의 표면에 미세한 잔털이 있는 경우도 있고,
향은 거의 없거나 아주 은은한 수준입니다.
동백꽃과 비슷하지만 훨씬 가볍고 단아한 인상이라,
여름 꽃 중에서 보기 드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열매
열매는 10월 무렵에 성숙하며,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의 핵과입니다.
처음엔 연두색을 띠다가 익으면서 갈색으로 변하고, 끝이 살짝 뾰족한 모양을 가집니다.
직경 1cm 내외로 크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매끈합니다.
씨앗은 껍질 안에 1개가 들어 있고, 그 구조는 식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편이에요.
이 열매는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남아 있으며,
자연스럽게 떨어지기도 하고, 새들이 먹기도 합니다.
생육 환경과 분포
노각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속, 특히 습윤한 사질양토에서 자랍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지만,
그늘에서도 어느 정도 생육이 가능하고 내한성도 꽤 강한 편입니다.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땅에서 가장 잘 자라며,
도심지보다는 자연림, 수목원, 산림욕장 등에서 볼 수 있는 수종이에요.
특히 지리산, 내장산 일대에서는 자생 상태 그대로 자라는 개체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조경에서의 활용
노각나무는 단아한 수형과 고운 수피 덕분에 조경수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특히 수피의 무늬가 겨울철에도 장식 효과를 주기 때문에 사계절 관상 가치가 있으며,
꽃과 단풍, 열매까지 모두 갖춘 다재다능한 수목이에요.
하지만 생장 속도가 빠르지 않고, 배수 조건과 습도 조절에 신경 써야 하는 수종이므로
도심 조경보다는 수목원이나 공공 정원 등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무리하며
계절마다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고 새로워지는 노각나무는
볼 때마다 새로운 인상을 남기는 나무입니다.
노각나무는 여름에는 조용한 흰 꽃이 피고, 가을엔 붉게 물든 잎 사이로 작은 열매들이 맺히며,
겨울엔 껍질이 무늬처럼 벗겨지며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비 오는 날, 수피에 물기가 맺혀 무늬가 더욱 선명해질 때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주변에서 자주 보지는 못했던 저는
산길을 걸으며 노각나무의 수피 무늬만 보아도 반가움이 느껴집니다.
수목감별을 하며 이처럼 매력적인 나무들을 만나게 되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