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감별 표준수종/수목감별 120종

39. 먼나무 (Ilex rotunda)

초록사유 2025. 6. 19. 10:48

39. 먼나무 (Ilex rotunda)

몇 해 전 겨울,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허기진 배를 채우려 들어간 어느 식당 옆 나무 한 그루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차가운 계절에 생생한 붉은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는 그 나무는,
어딘가 이국적인 정취마저 물씬 풍겼고,
저는 얼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때는 그저 멋스럽다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야 그 나무가 바로 '먼나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 교목으로,
특히 붉은 열매가 달리는 겨울철에
그 진정한 매력이 드러나는 나무입니다.

성숙한 나무는 그 키가 평균 10미터, 크게는 20미터에 이르는 교목으로 성장합니다.
가지가 넓게 퍼지며 자연스럽게 둥글고 단정한 수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위적인 전정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멋스러운 경관을 연출합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가로수, 공원수,
그리고 건물의 품격을 높이는 독립수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꽃과 열매

봄이 무르익는 5월에서 6월 사이,
먼나무는 새로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조그마한 꽃들을 피워냅니다.
연한 자줏빛 혹은 황록색을 띠는 꽃들은 크기가 작아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여러 개의 작은 꽃들이 우산살처럼 모여 피어나는 산형꽃차례를 이룹니다.

무엇보다 먼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암수딴그루입니다.
우리가 겨울에 감탄하는 그 붉은 열매는
오직 암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결실이죠.
그래서 가로수로 심을 때 화려한 열매를 감상하고 싶다면
반드시 암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수나무는 오직 꽃가루를 제공하는 역할만 하고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먼나무의 존재 가치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10월부터 붉게 익기 시작하는 열매는
지름 7~10mm 정도의 둥근 핵과로,
작은 구슬들이 빽빽하게 모여 달립니다.
초록의 잎사귀를 배경으로 타오르듯 매달린 붉은 열매의 군집은
그 어떤 꽃보다도 화려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먼나무의 잎은 가지에 서로 어긋나게 달립니다.
만져보면 두툼한 가죽질감이 느껴지며,
표면은 짙은 녹색으로 반짝이는 광택이 돌아 사계절 내내 건강한 생명력을 뽐냅니다.
잎의 뒷면은 그보다 연한 황록색을 띱니다.

모양은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길이는 약 5~10cm, 폭은 2~4cm 정도 됩니다.
잎의 가장자리는 톱니가 없이 밋밋해서 다른 감탕나무과 나무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가장자리가 매끈한 만큼 부드럽고 단정한 인상을 주며
잎끝은 둥글거나 살짝 뾰족하게 마무리됩니다.

수피 및 가지

먼나무의 수피는 대체로 매끄러운 편이며 회갈색을 띱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껍질눈(피목)이 뚜렷하게 관찰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린 가지는 녹색을 띠다가 점차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나무는 곧게 자라며 전체적으로 둥근 수형을 이루어
가로수나 공원수로 아주 적합한 형태를 가집니다.


마무리하며

척박한 겨울에 유독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붉은 열매는 스산한 풍경에 온기를 더할 뿐 아니라,
혹독한 계절을 나는 새들을 위한 생명의 신호입니다.
새는 열매로 허기를 채우고 겨울을 견뎌내고,
나무는 새를 통해 자신의 씨앗을 퍼뜨리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다른 이의 어려움 앞에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그 사람을 위한 배려인 동시에 '우리'라는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때,
그 힘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스스로를 돕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요즘,
자연의 지혜처럼 서로에게 기꺼이 힘이 되어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