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무궁화 (Hibiscus syriacus)
43. 무궁화 (Hibiscus syriacus)
어릴 적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무궁화가 울타리처럼 빙 둘러 서 있었습니다.
키 작은 나무에 매일매일 피어나던 희고 붉은 꽃들은
어린 눈엔 그저 이쁜 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들리는 소리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꽃 모양이 어딘지 촌스럽다고도 하고,
벌레가 많이 생기는 나무가 하필 나라꽃이라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았다는 둥
속상한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한때는여기저기 흔하던 그 꽃이
이제는 아주 오래된 동네에서나 가끔 눈에 띄는,
빛바랜 추억 속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꽃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가을의 문턱인 10월까지,
무궁화는 매일 새로운 꽃을 피워냅니다.
가지 위쪽의 잎겨드랑이에서 한 송이씩 피어나는데,
꽃의 지름은 5~7cm가량 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꽃잎 5장이 활짝 펼쳐지는 ‘홑꽃’입니다.
꽃잎은 계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도란형)이며
아래쪽은 서로 붙어 있습니다.
꽃의 중심부에는 수많은 수술들이 한데 모여 기둥(수술통)을 이루고,
그 기둥의 한가운데를 뚫고 5갈래로 갈라진 암술머리가 밖으로 솟아 있습니다.
이 독특한 구조는 무궁화가 속한 아욱과 식물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꽃의 색과 형태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계통으로 나뉩니다.
- 단심계(丹心系): 꽃의 중심부에 붉은 무늬(단심)가 있는 가장 흔한 종류입니다.
흰 꽃잎에 붉은 단심이 있는 ‘백단심계’, 붉은빛이 도는 꽃잎에 단심이 있는 ‘적단심계’,
푸른빛이 도는 ‘청단심계’ 등으로 나뉩니다. - 배달계(배달系): 단심 없이 순백색의 꽃잎을 가진 품종으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배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아사달계(아사달系): 흰 바탕의 꽃잎 가장자리에 붉은색 무늬가 띠처럼 둘러진 것이 특징입니다.
열매와 씨앗
가을이 깊어지면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길이 2cm 정도의 긴 타원형이며,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익으면서 점차 황갈색으로 변합니다.
표면에는 노란색의 별 모양 털(성모)이 빽빽하게 덮여 있습니다.
10월경 완전히 익은 열매는 5갈래로 쪼개지며 마른 껍질을 터뜨립니다(삭과, 蒴果).
그 안에서 콩팥 모양의 씨앗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씨앗의 등 쪽에는 긴 털이 나 있어
바람을 타고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잎
무궁화의 잎은 서로 어긋나게 자리하며(호생),
길이는 4~10cm, 폭은 3~5cm 정도로 손가락 두세 마디 정도의 크기입니다.
모양은 대체로 계란형이거나 마름모꼴에 가까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잎 가장자리가 3갈래로 얕게 갈라진다는 점입니다.
마치 아기 단풍잎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갈라짐이 훨씬 얕고 부드럽습니다.
잎의 질감은 약간 두꺼운 종이를 만지는 듯하며,
표면에는 윤기가 없고 뒷면의 잎맥 위주로 부드러운 털이 나 있습니다.
잎자루의 길이는 0.7~2.0cm 정도 됩니다.
줄기(수피)
무궁화는 보통 2~4m까지 자라는 키 작은 나무(낙엽 활엽 관목)입니다.
줄기는 회색빛이 도는 갈색(회갈색)을 띠며,
어릴 때는 표면이 비교적 매끄럽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로로 얕게 갈라집니다.
가지는 섬유질이 많아 질기고 잘 꺾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형이 단정하게 자라기보다는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경향이 있어,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려면 주기적인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마무리하며
잊고지냈던 무궁화를 뜻밖에도 한 휴양지에서 만났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알던 그 무궁화는 아니었지만,
더 크고 화려한 색을 뽐내는 비슷한 생김새의 꽃들이
리조트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꽃들은 우리 무궁화와 같은
`히비스커스’ 속(Hibiscus)의 식물들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가 흔히 카페에서 차로 마시던 히비스커스가
바로 무궁화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습니다.
물론, 우리가 차로 마시는 히비스커스는 주로
'로젤(Hibiscus sabdariffa)'이라는 다른 품종의 꽃받침으로 만들고,
휴양지의 화려한 꽃은 다른 종이지만,
모두 무궁화와 가까운 집안 식구인 셈입니다.
촌스럽다고, 벌레가 많다고 외면했던 사이,
무궁화는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제 곁에 가까이 있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