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2025. 6. 12. 10:42수목감별 표준수종/수목감별 120종

32.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고요한 겨울 사찰의 마당을 걷다가,
인기척 없이 '툭' 하는 낮은 소리에 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발 밑을 보니, 방금 전까지 나뭇가지 위에서 화려했을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흙바닥 위에 온전히 그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흩날리지 않고, 시들지도 않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후둑 떨어져 버린 한송이가 못내 서운합니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과 섬 지방의 산기슭에서 자라는
차나무과의 상록 활엽 소교목입니다.
일반적으로는 7m 안팎의 키로 자라지만,
좋은 환경에서는 15m에 이르는 교목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나무는 보통 땅에서부터 여러 줄기가 올라와 풍성하고 둥근 수형을 만듭니다.

잎은 가지에 서로 어긋나게 달리며, 길이는 5~12cm, 폭은 2.5~6cm 정도의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입니다.
끝은 뾰족하고 밑은 쐐기 모양이며,
잎 가장자리의 위쪽 절반에만 물결 같은 얕은 톱니가 발달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만져보면 느껴지는 두껍고 빳빳한 가죽 같은 질감,
그리고 표면의 짙은 녹색과 강한 광택입니다.
잎 뒷면은 상대적으로 옅은 황록색을 띱니다.
이 윤기나는 잎 덕분에 겨울에도 늘 푸르고 생기 있는 모습을 자랑합니다.

꽃과 열매

꽃은 지역에 따라 이르면 12월부터 늦으면 4월까지, 주로 이른 봄에 핍니다.
붉은색이 기본이지만 원예 품종이 발달하여
분홍색, 흰색, 여러 색이 섞인 것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꽃은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서 한두 개씩 피는데,
꽃자루가 거의 없어 가지에 바싹 붙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름은 5~8cm 정도로 제법 크고,
5~7장의 꽃잎이 밑부분에서 서로 합쳐져 있습니다.

꽃 안쪽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수많은 노란 수술들 또한
밑부분이 서로 붙어 하나의 통 모양을 이루며,
이 수술통이 꽃잎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구조 때문에 동백꽃은 질 때 꽃잎이 낱장으로 흩날리지 않고,
수술과 꽃잎이 한 몸처럼 붙은 채로 통째로 '툭'하고 떨어져 내립니다.
그래서 동백나무 아래에 가보면,
아직 생생한 모습 그대로의 붉은 꽃송이들이
마치 누군가 일부러 내려놓은 듯
바닥에 소복이 깔려있는 장관을 볼 수 있습니다.
갓 떨어진 꽃은 시들지 않아, 땅 위에서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한
고결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가을이 되면 꽃이 졌던 자리에는 지름 3~5cm 정도의 둥근 열매가 열립니다.
단단한 껍질은 9~10월경 갈색으로 익으며 3갈래로 벌어지고,
그 안에는 짙은 갈색의 윤기나는 씨앗이 1~2개씩 들어있습니다.
이 씨앗을 짜서 얻는 동백기름은 예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자원이었습니다.


수피

나무껍질은 대체로 매끄러운 회백색을 띠며,
오래된 나무는 회갈색으로 변하고 약간 거칠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벗겨지거나 갈라지지는 않습니다. 어린 가지는 갈색입니다.


비슷한 수종

조경 현장에서는 종종 동백나무를
애기동백(산다화, Camellia sasanqua)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가장 쉬운 구별법은 바로 꽃이 지는 모습입니다.
동백나무는 꽃이 통째로 떨어지지만, 애기동백은 꽃잎이 한 장씩 흩날리며 떨어집니다.
또한 애기동백은 보통 가을부터 초겨울(10~12월)에 꽃이 피고 향기가 있지만,
동백나무는 이른 봄에 주로 피고 향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수목감별 시험에는 동백나무 한가지만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마무리하며

꽤나 오래된 노래이긴하지만, 가수 송창식씨의 `선운사'라는 노래에는
동백꽃을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이라고 표현을 했지요.
`눈물방울이 뚝 떨어지듯 동백꽃이 후두둑 지는 순간
가슴 철렁하는 그 느낌이
저를 다시 풋풋하던 그 시절로 데려다주는 것 같습니다.

단지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지나온 제 시간의 서사를 품고 있는 듯한 동백꽃이
문득 보고싶어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