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때죽나무 (Styrax japonicus)

34. 때죽나무 (Styrax japonicus)

얼마 전, 이른 여름의 문턱에서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때였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나뭇가지 끝에 조롱조롱 매달린
하얀 종 모양의 꽃들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수줍은 듯한 모습의 하얀 꽃들이 참 많이도 매달려 있더군요.
아! 이게 바로 '때죽나무'구나. 금방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쁜 꽃 모양과 `때죽나무'라는 이름이 영 어울리지 않아 갸웃하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는 마법처럼 동네 곳곳에서 그 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숨어있던 친구를 발견한 것처럼,
마주칠 때마다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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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기슭이나 계곡에서 자생하는
낙엽 활엽 소교목입니다.
보통 높이 10m 정도까지 자라며, 때로는 15m에 이르기도 합니다.
추위와 공해에 모두 강한 편이라
도심지의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서도 사랑받는 조경수 중 하나입니다.
하얀 종 모양의 꽃과 회갈색의 매끈한 수피,
그리고 독특한 열매를 보면 여러분도 금새
'아! 때죽나무구나' 하실 거예요.

꽃과 열매 

꽃은 5월에서 6월 사이,
그 해에 새로 자라난 가지의 끝부분에서 아래를 향해 피어납니다.
2~5개의 흰색 꽃이 총상꽃차례로 달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종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꽃의 지름은 1.5~3.5cm 정도이며,
2~4cm 길이의 꽃자루에 달려 있습니다.
꽃받침은 녹색이고 겉에 별 모양 털이 있으며,
꽃부리는 5개로 깊게 갈라져 뒤로 살짝 젖혀집니다.
이 시기 때죽나무 아래를 지나면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저는 잘 모르고 지나갔네요.

여름이 지나고 9월에서 10월이 되면, 꽃이 있던 자리에 열매가 열립니다.
열매는 지름 1~1.4cm 정도의 둥근 달걀 모양을 한 핵과(核果)입니다.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점차 회백색 또는 회갈색으로 익어가는데,
겉면에는 별 모양의 털이 빽빽하게 덮여 있습니다.
열매의 끝부분에는 암술대가 마른 채로 남아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열매의 껍질에는 '에고사포닌'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어,
과거에는 이것을 찧어 물에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거나,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때죽나무'라는 이름도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잎 

잎은 가지에 서로 어긋나게 달리는(호생) 형태를 보입니다.
길이는 3~8cm, 폭은 2~5cm 정도의 달걀 모양 또는 긴 타원형이며,
잎 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은 쐐기 모양에 가깝습니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작은 톱니가 드문드문 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잎의 앞면은 짙은 녹색을 띠고, 뒷면은 연한 녹색 바탕에
별 모양의 털(성상모, 星狀毛)이 빽빽하게 나 있어 희끗하게 보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잎은 맑은 노란색으로 곱게 물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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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 

어린 나무의 수피는 비교적 매끄러운 질감을 가지며
회갈색 또는 암회색을 띱니다.
하지만 나무가 나이를 먹고 굵어지면서
점차 세로 방향으로 얕게 갈라지기 시작하며,
갈라진 틈 사이로 속껍질이 드러나 얼룩덜룩한 무늬를 만들기도 합니다.
오래된 나무의 줄기는 더욱 깊게 패이며 독특한 질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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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이제 출퇴근길이나 주말 산책길은 더 이상 무심코 걷는 길이 아닙니다.
아파트 화단 구석에서, 상가 앞 작은 쉼터에서, 심지어 버스 정류장 옆에서도
"나 여기 있었어" 하고 속삭이는 때죽나무를 발견하곤 합니다.
어느새 하얀 종 모양의 꽃들이 하얀 카펫처럼 바닥에 떨어지고,
그 자리엔 앙증맞은 초록색 열매들이 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계절의 흐름을 실감합니다.